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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70호)] 대학생이 마주한 ‘6411의 목소리’

재단활동 2025. 05. 29





 

대학생이 마주한 ‘6411의 목소리’

노회찬재단과 경희대학교는 지난 2023년부터 3년째 교양강좌 <후마니타스 특강 : 6411의 목소리와 노동존중 사회>를 협력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주 ‘6411의 목소리’ 필자를 한 분씩 모셔서 특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이주민 등 존재하지만 목소리를 갖기 어렵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들이 강연자로 나서 청년들에게 자신의 삶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전반부의 강연을 듣고 학생들이 제출한 소감문 중 세 편을 선정하여 소개합니다. 









변화가 느리더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 김하영 (기악과 4년)


피아노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제게 5주차 후마니타스 특강에서 들은 최수근 강사님의 강연과, ‘6411의 목소리’에 실린 「‘평균 연봉 1357만원’ 한국어 교원의 삶」이라는 글은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한국어 교원들의 현실은, 시간제 피아노 강사로서 제가 겪는 어려움과 참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강사님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보람이 얼마나 컸을지 저도 강사로서 공감이 됩니다. 하지만 그 보람됨을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불안정한 고용 환경과 낮은 임금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졌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의 음악적 성장을 지켜보며 큰 보람을 느끼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는 그 열정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약속된 근무 시간이 지켜지지 않거나, 예고 없이 줄어드는 근무시간은 피아노 강사로서 흔히 겪는 일입니다. 그럴 때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느끼지만, 무엇보다 제가 쏟은 시간과 노력이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피아노 강사 자격을 갖추기까지 10년 넘게 1회에 10만 원이 넘는 레슨비를 감당하며 대학에 진학하고, 오랜 시간 노력해 왔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원 원장님은 제가 들인 시간과 노력,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제가 배운 기술을 ‘적은 돈으로’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콩쿨반 아이들은 일반 학생들보다 진도도 빠르고 요구되는 기술도 많아서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부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없습니다. 이런 점은 강사님께서 말씀하신, 한국어 교원들이 외국인 학생들의 논문을 첨삭하거나 번역을 도와주면서도, 밤낮으로 수업을 준비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는 현실과 겹쳐 보였습니다. 물론, 강사님의 말씀처럼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자발적인 선택이지만, 간절히 부탁하는 학생들을 쉽게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저 역시 원장님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강연을 들으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전문성을 요구받으면서도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불안정한 고용 구조, 사회적인 인식 부족, 특히 ‘평균 연봉 1357만 원’이라는 문장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해야 하는 많은 강사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강연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피아노 교육 현장에서 겪는 성차별 문제도 떠올랐습니다. 강사님께서 말씀하신 “급여가 적어서 남자가 가장 노릇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남자 선생님한테는 수업을 더 챙겨줘”라는 과거 상사의 말은 피아노 학원에서 남성 강사들이 겪는 또 다른 차별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피아노 학원에서는 남성 강사를 잘 채용하지 않거나, 여성 강사에게는 요구하지 않는 범죄경력 조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면접조차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능력이나 열정과 무관하게 성별로 인해 암묵적인 차별을 겪는 경우가 존재합니다.

강연을 들으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한국어 교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모습은 제게 감동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노동조합 설립 초기의 어려움부터, 내부 의견 조율과 외부의 냉담한 시선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특히 부당한 인사평가 기준 변경에 항의하고 당당히 맞선 모습은 교육자로서의 책임과 용기를 동시에 느끼게 했습니다. 강사님은 “한국어 교원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곧 학생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교육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학생들 또한 행복하게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피아노 교육 환경이 개선되고 강사들의 권익이 보호받을 때, 아이들이 더욱 즐겁게 음악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투쟁을 지지하고 함께해준 장면은 교육자와 학생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진정한 연대의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파업을 통해 더 나은 근무 조건을 얻고, “선생님”이 아니라 “위원장님”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최수근 강사님의 강연과 글을 통해 저는 더 이상 이 현실을 ‘나 혼자만의 문제’로만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직접 활동에 참여할 용기를 내진 못하지만, 최수근 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피아노 강사로 겪은 어려움이 단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화는 느리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6411의 목소리(최수근), ‘한해 수입 1357만원’ 한국어 교원의 삶이란








우리가 보지 못한 노동, 6411 버스가 싣고 온 현실 
- 박찬규 (사회학과 3학년)


6411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노동을 감내하는 이들의 외침이다. 고 노회찬 의원이 탔던 새벽 버스 6411에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사람들로 표현된다. 이들의 상황은 매우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노동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지만, 항상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후마니타스 특강의 강연자로 오신 학교급식 노동자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내 주변에 머물러 있지만, 미처 관심 가지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경희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도우미 활동을 한 적이 있는 나에게, 한국어학당 노동자 역시 그러하다. 이처럼 6411의 목소리는 항상 우리 주변에 존재해 왔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한겨레 신문에서 연재하는 <6411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대한민국 사회가 마주한 노동문제와 복지의 사각지대를 조명한다.

 후마니타스 특강에 자리해 주신 연사 중 가장 인상 깊은 특강은 ‘연예인 매니저의 삶과 노동환경’이었다. 나는 연예인 매니저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있었다. 연예인과 그들 매니저의 일상을 담은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비친 매니저의 삶은 낭만적이었다. 그들의 삶은 연예인과 함께하는 신기한 경험들로 가득 차 있었고, 매니저가 연예인만큼이나 유명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매체에서 비춰지지 않은 혹은 방송으로 선택되지 못한 그들의 삶과 목소리는 정말 비참했다. 아이돌 매니저였던 연사분은 5시 40분에 있는 메이크업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새벽 2시 반에 기상했으며, 하루 종일 운전과 촬영장에서의 각종 노동을 지속해야 했다. 적절한 업무 분배가 이뤄지지 않아 노동환경 개선이 절실했으며, 평균 임금 수준 역시 그들이 감당하는 노동에 비해 부족했다. 제도적인 뒷받침 역시 미비하다. 근로 시간, 수당 체계, 근로계약서 등 제도적인 대책이 부족했다. 또한, 매니저 일은 고도의 감정 노동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고 연예인 매니저에 대한 나의 낭만은 무너졌다. 연예인과 친구가 되고 남들은 하지 못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는 이상적인 직업인 매니저는 그 속에 감춰져 밖으로 알려지지 못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특강을 듣기 전 소외된 노동자의 삶을 조명하는 6411의 연재 취지에 연예인 매니저는 해당하지 않는 직업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던 모습과 다른 그들의 실제 노동환경은 철저히 감춰졌으며 제도적 문제점과 고된 노동환경, 부당한 처우는 TV 프로그램에서 배제되었다. 이번 후마니타스 특강을 통해 나는 그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학교급식 조리실무원 연사분은 자신의 노동에 큰 자부심이 있으셨다. 그녀의 배에 있는 흉터는 이를 증명하는 일종의 훈장이었다. 그러한 자긍심이 고된 노동환경을 버틸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들에게 상처와 아픔이 훈장이 될 수 있을까? 현재 폐암으로 투병 중인 급식실 노동자 두 명은 산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들은 행정적 지원은 고사하고 현장 확인에도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그들은 폐암의 원인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률 비용 또한 그들의 몫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들 몸의 흉터는 더 이상 훈장일 수 없다. 소외와 부당한 처우의 아픔일 뿐이다. 그녀는 대책 마련을 강조하며, 조리원 1인당 식수 담당 인원을 줄여 고강도 노동의 부담을 완화하고 노동환경 개선이 필요함을 촉구했다.

 두 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후마니타스 특강을 방문해 주신 여러 연사자분들은 공통으로 제도적 개선을 강조하셨다. 그들을 복지 사각으로부터 꺼내줄 수 있는 제도 말이다. 이는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나는 그러한 제도적 개선을 촉구할 수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에도 주목하고 싶다. 6411의 목소리를 외면한 것은 제도이기 이전에 우리들이다. 우리 주변의 고마운 사람 때로는 우리의 가족이자 친구이기도 한 어쩌면 우리 자신이기도 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제도적 개선 이전에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에 경청하고 공감해야 한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의 기획 연재는 이러한 노력의 한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 주변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회를 향한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같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6411 버스의 차갑고 무거운 공기를 따뜻하게 바꾸어 줄 수 있다.

▶ 6411의 목소리(서강빈, 가명), 휴일도 주야간도 없다…연예인 매니저는 ‘고생’이 당연할까
▶ 6411의 목소리(정경희), ‘아이들 밥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자긍심과 보람








침묵하는 법, 외면하는 제도, 그리고 그 앞의 나

- 한수빈 (약과학과 3년)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누군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타인의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후마니타스 특강을 듣고, 특히 한겨레 기사 속 최윤미 노동자의 강의를 접하고 나서, 마음 한구석이 쿡쿡 쑤셨다.

 "나도 언제든 저 자리에 설 수 있겠구나."
 "아니, 이미 누군가의 침묵으로 인해 그 자리에 선 사람이 있구나."

덴소코리아에서 18년을 일한 여성이 어느 날 일방적으로 해고당했다. 법원도 부당하다고 했고, 회사조차 단체 협약을 어겼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국가도, 제도도, 언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이 더 섬뜩하게 다가왔다.

“외국인투자기업이라 어쩔 수 없다.”

왜 ‘어쩔 수 없음’이 가장 쉬운 답이 되는 걸까? 나는 이 강의를 들으며, 처음으로 ‘법이 약자의 편에 서지 않는 순간'을 똑바로 마주했다. 강의 속 수많은 사례들이 그랬고, 최윤미 씨의 이야기는 그중 가장 현실적으로, 가장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노동권, 인권, 생존권, 말은 많은데, 실제로 지켜지는 건 별로 없다. 세상은 누군가에게 너무 관대했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잔인했다. 나는 분노했다. 그리고 동시에 무력해졌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멈춰서 있던 나에게 후마니타스 특강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침묵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 말이 뼛속 깊이 박혔다. 나는 이제 이전처럼 쉽게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부당한 해고를 보며 ‘회사가 사정이 있었겠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나랑 상관없다’며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부터 바꿔야겠다고, 강의를 듣는 순간 결심했다.

누군가가 부당하게 사라지지 않도록, 누군가의 싸움이 혼자가 되지 않도록, 이제 나도 싸우는 사람의 편에 서고 싶다. 그 시작은, 침묵을 깨는 것부터이다.

나는 이제 알겠다. ‘불의에 분노하는 것’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본질이라는 것을. 그 분노를 행동으로 이어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사회’를 만든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덴소 사태는 단지 한 사람의 해고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이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아이러니다. 일한 시간보다 싸게 평가되는 인생, 계약서보다 가볍게 여겨지는 존엄. 그 앞에서 법은 왜 그토록 조용했을까? 제도는 왜 그렇게 허약했을까? 가장 무서운 건, 이 일이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기록해야 한다.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후마니타스 특강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수업이 아니었다. 내 삶의 방향을 묻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아직 완벽한 답은 없지만, 최소한 나는 멈추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기억하겠다고, 연대하겠다고, 행동하겠다고. 그녀가 카메라 앞에서 남긴 마지막 문장을 나는 오래도록 품고 있다.

“그대의 딸이 해고당해도 괜찮은가?”
나는 이제 이렇게 되묻는다.
“나는 그 순간,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인가?”

▶ 6411의 목소리(최윤미), 외국인투자기업은 법원 판결·단협 위반해도 괜찮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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