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70호)] "저 두 사람을 내려올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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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 사람을 내려올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 조동진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스스로 폐간을 원하는
《굴뚝신문》이라고 있습니다.
2015년 1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김정욱과 이창근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계기로 전·현직 기자들, 사진가들, 노동활동가들이 함께 《굴뚝신문》을 만들었습니다. 노순택 작가에 따르면 “창간과 동시에 폐간되기를 꿈꾸는 신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고공농성이 끝나지 않으면서 2월에 다시 한번 《굴뚝신문》을 만들었습니다. 같은해 7월에는 경북 구미의 스타케미칼(파인텍) 해고노동자들의 굴뚝 농성이 400일이 되면서 3호를 발행했습니다.
‘하루빨리 폐간되길 바라는 신문’ 굴뚝신문이 다시 나왔습니다. 자신의 일터를 지기키기 위해, 땀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하늘로 올라간 노동자들, 아니 하늘로 쫓겨난 노동자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더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1면 제목이 ‘저 위, 사람 사람 사람’인 이번 굴뚝신문은 ‘하늘 감옥’에 갇힌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비정규직, 특수고용, 플랫폼노동 등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담겨있습니다.
지난 26일 기준으로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의 고공농성이 505일,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은 103일,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73일이 됩니다. 고진수는 “안 싸우고 세상이 바뀔까요?”라고 질문합니다. 박정혜는 “때 밀고 빵 먹고 싶어요”라고 하고, 김형수는 “가장 힘든 날” 오늘이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내일이 가장 힘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의는
저 두 사람이 웃으면서 내려오는 것"
2012년 10월 17일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인 최병승, 천의봉 두 명이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쪽에 위치한 고압선 송전철탑 15m와 20m 지점에서 겨우 앉을 수 있는 크기의 나무판자를 깔고 앉아 각각 밧줄로 몸을 묶고 고공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현대차의 불법파견 은폐와 신규채용 중단, 현대차 모든 사내하청노동자의 즉각 정규직 전환,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구속 등을 요구했습니다.
10월 25일 노회찬(진보정의당 공동대표)은 1주일째 고공농성 중인 송전탑을 찾아가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간부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노회찬은 <난중일기>를 통해 이렇게 전했습니다.
"10월 25일(목) 맑음. 심상정 후보, 조준호 대표, 천호선 최고위원과 함께 명촌주차장을 찾았다.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출입구 중의 하나이다. 지난 20여 년간 무던히도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진보정당을 알리러, 선거 때는 대통령 후보, 울산시장 후보, 국회의원 후보, 울산북구 구청장 후보들을 모시고 출근하는 노동자, 밤샘근무하고 퇴근하는 노동자를 만나러 아침 7시에 찾던 곳이다. 현대자동차공장의 여러 정문 중 겨울 아침 바람이 차갑기로 유명한 곳이다. 한 시간 반가량 아침인사를 나누다 보면 온 몸이 얼어있기 십상이다.
지금 그 주차장 입구 고압선 송전탑 위에 최병승, 천의봉 등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두 사람이 일주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저 위험한 곳으로 자진해서 올라간 것이 아니라 법원의 불법파견 판정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채용을 거부하는 현대자동차 사용자에 의해 저 위험한 곳으로 쫓겨난 것이다. (…) 송전탑 아래 풀밭에서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간부들과 후보, 당지도부의 간담회를 가졌다. 정의란 무엇인가? 지금 대한민국의 정의는 저 두 사람이 웃으면서 내려오는 것이 정의이다. 저 두 사람을 내려올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굴뚝신문 없는 나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2016년 겨울, 노회찬은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탄핵’에 앞장서면서, 촛불 이전과 촛불 이후는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세상을 오지 않았고, 우리는 다시 추운 겨울 ‘윤석열 탄핵’을 외쳐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달라야 합니다. 여의도, 광화문, 한강진, 남태령을 밝힌 응원봉에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으려는 절박함과 함께 차별 없는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투명인간들의 목소리가 담겨있었습니다.
대선이 며칠 남지 않은 지금, 2012년 10월 21일 노회찬의 진보정의당 당대표 수락 연설을 나지막하게 소리내어 읽어봅니다. 노회찬은 가장 빛나지 않은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가장 어려운 곳에서 투명인간과 함께 비를 맞았습니다. 우리가 함께 광장에서 외쳐온 '다시 만날 세계'는, '다시 만들어갈 민주주의'는 노회찬이 말한대로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자가 자신의 일터를 지키고자 하늘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나라, 농민이 땀흘려 키운 농작물을 갈아엎어도 되지 않는 나라, 장애인이 이동권을 위해 포체투지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여성이 안전하고 존중받는 나라, 성적 지향과 인종, 국적 등으로 차별받지 않는 나라...
2025년 6월 3일이 ‘혐오와 차별 없는 나라’,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의 시작이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투명인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새 대통령에게, <6411 연설> 전문을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 위에 올라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3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 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다섯 분도 다 투명인간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아홉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이 진보정당,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었습니까? 강물은 아래로 흘러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대중 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