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72호)] 노회찬 의원 7주기 추모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온라인 추모전시)
노회찬 의원 7주기 추모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 강상구 (노회찬정치학교 교장,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7주기 추모 전시회 제목은 ’끝나지 않은 싸움, 삼성X파일과 노회찬‘이었습니다.
삼성X 파일 사건은,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정경유착, 정언유착 사건입니다.
1997년 대선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나눈 대화를 안기부가 도청했고, 이를 MBC가 2005년 7월 22일 보도했습니다. 보도 내용에 빠진 게 있었는데, 당시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7명의 고위 검찰들의 실명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진보정당 의원으로 당선된 지 1년이 막 지났던, 2005년 8월에 이 명단을 공개합니다. 사회적 파장은 엄청났고,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정의롭게 행동했던 사람들은 처벌을 받았고, 불의의 당사자였던 자들은 그 이후로도 아무 일 없이 잘 살았습니다. 온라인 추모제 작업을 하면서, 새삼 이 점이 가슴 아팠습니다.
검찰은 이건희, 이학수, 홍석현 중 누구도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떡값 검사는 전혀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X파일 내용을 보도했던 MBC 이상호 기자, 녹취록 전문을 보도했던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이 기소됐습니다. 그리고 노회찬 의원이 기소됐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2007년 기소되어, 6년의 재판 끝에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 받습니다.
당시 삼성X파일 사건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 황교안의 지휘하에 진행됐습니다. 그는 수사결과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수사”라고 했고, 노회찬 의원은 수사 결과 보고서를 '변호인의 변론 요지에 가깝다.'고 평했습니다. 2009년에 노회찬 의원에 대한 1심 선고가 났었는데, 이때 재판장은 국민의 힘의 추천을 받아 현재 헌법재판관으로 있는 조한창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에 대해 최종유죄판결을 확정한 당시의 대법원장은 양승태였습니다.
우리가 삼성 X파일이라고 부르는 내용은 안기부가 작업하여 만들어 놓았고,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확보한 녹음테이프 총 274개 중 3개에 들어 있던 내용입니다. 나머지 271개는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로 검찰이 보관 중입니다.
노회찬 의원은 당시에 나머지 테이프들의 내용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만약 그 내용들이 공개되었다면, 당시는 한국 현대사에서 몇 번 없었던 검찰개혁의 적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검찰을 넘어 재벌개혁, 언론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고, 불의는 그 이후에도 점점 쌓였습니다. 불법적 비상계엄은 어쩌면 그 끝에 일어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삼성X파일 사건을 통해 드러난 재벌-권력-언론사의 검은 결탁을 끊어내기 위해 싸웠습니다. 싸움을 이어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