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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75호)]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창비)> 북토크 후기 (전은주, 서윤경, 김벼리)

재단활동 2025. 11. 03





사실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이든 다 노동자다
그러니 ‘641의 목소리’는 계속 되어야 한다


포항 책방수북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 북토크 후기
- 전은주


지난 근로자의 날, 도서관 독서회의 주제도서는 <<당신은 얼마짜리입니까>>이었다. 함께 읽고 토의했다. 독서회 연간 계획을 짤 때 문학 작품 외에도 다양한 주제 도서를 선정하려 한다. 마침 올 해 근로자의 날은 독서회가 있는 목요일이어서 맞춤했다.

회원들은 ‘노회찬 재단’과 ‘6411의 목소리’의 의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땐 누구보다도 진지했다. 노회찬 의원의 연설 영상도 함께 보았다. 언제 들어도 울컥해지는 노회찬 의원의 목소리.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투명인간’들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의 가족이며 이웃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본적인 생존권과 인간의 존엄성조차 잘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단다.

회원들은 다양한 근로의 형태에 놀라고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특히 타투이스트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흔히 하는 눈썹 문신이 불법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타투를 의료행위로 분류한 곳은 한국밖에 없단다. 전 세계에서 의료기기 인증을 받고 생산되는 타투 용품은 없으니 의사들이 시술하는 타투도 비의료기기로 할 수 밖에 없어서 엄연히 불법이다. 이런 사회적 모순에 분노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어서 일까, 올 8월에 국회에서 ‘문신사법’이 통과되었다. 기존에는 의사의 시술만이 합법이었는데 이제는 국가 전문면허를 가지면 누구나 합법적으로 시술할 수 있게 되었다.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7년이면 국가전문면허로 시행될 예정이라니 이제는 타투나 반영구화장도 당당하게 시술하고 시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뉴스 링크를 독서회 단톡방에도 가족방에도 퍼 날랐다. 6411의 목소리가 사회에 효력을 발휘하는구나, 짜릿했다.

그러던 참에 책방수북에서 진행하는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 북토크 소식을 들었다. ‘6411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주말 저녁 시간이라 망설이기도 했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을까, 생각보다 참가자가 많지 않았다. 작가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조촐한 인원이라 직접 이야기 나누는 듯해서 더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날 초대된 ‘6411의 목소리’는 한송이 교통방송 리포터, 신미선 간호사, 이상홍 경주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었다. 고영직 평론자의 사회는 안정되고 깔끔한 설명으로 몰입도를 높였다.

신미선 간호사는 일반적인 간호 행위(예를 들면 환자에게 사용한 재료대나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전산에 입력하는 작업)에 대한 수가는 거의 산정되지 않는다며 병원 입장에서는 간호사의 노동보다는 자판기 커피가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간호사가 많을수록 적자가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최소 인력이 있는 것이 당연시 된다. 그래서 간호사들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 그렇게 소진된 간호사는 언제든지 소모품처럼 신규 간호사들로 대체된다. 일반 환자들이 간호사들에게 존엄한 돌봄을 기대하려면 먼저 간호사들의 존엄이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상홍 경주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월성원전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투쟁 끝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비록 하청 비정정규직 신분이지만 고용이 안정되고 급여가 많이 인상되어 월성원전을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있단다. 하지만 정규직과 동일 노동을 하지만 급여는 정규직의 60퍼센트에 묶여 있다. 비정규직 신분 때문에 목돈이 필요할 때 신용대출을 못 받는다. 또한 정규직과 차별은 급여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구내식당도 이용할 수 없고, 심각한 주차난에도 원청 직원들은 별도의 주차면이 주어진단다. 그리고 18개월 주기로 ‘계획예방정비’라는 대규모 수리 정비를 약 2개월간 하는데 그때 정규직들은 특별 간식이 주어지지만 그들에게는 없단다. 현장에서는 같이 나눠 먹지만 꼭 얻어먹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사실 독서회 회원 중 한 분도 초등학교에서 돌봄 전담 교사(그때는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되기 전이었다)로 근무할 때 겪은 차별에 대해 자주 이야기 하곤 한다. 학교에서 행사나 기념일에 나눠주는 간식 꾸러미나 수건 같은 기념품들이 비정규직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단다. 집에 수건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간식이 탐나는 것도 아니었지만 대접받지 못한다는, 차별 받는다는 사실이 사람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단다. 그래서 선생님인 남편에게 기념품이나 간식 등 학교에서 나오는 것은 일절 집에 가져오지 못하게 했단다. 당신 아내도 학교에서 차별을 받았으니 청소하는 여사님이나 경비원들을 먼저 챙기라고 했단다. 

교통방송 리포터로서 15분 간격으로 교통정보와 기상정보를 전달한다는 한송이씨는 딱 봐도 전문 방송인 같았다. 정확한 발음과 듣기 좋은 목소리, 단정한 차림새, 전형적인 아나운서였다. 방송국에서 일한다면 다들 부러워하기도 하고 목소리를 듣고 알아보는 애청자도 생겼단다. 하지만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 1년에 두 차례 방송 개편을 앞두고 임금 협상도 없이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일, 방송 1개월차도 20년차도 출연료는 동일한 점, 교통방송 리포터 대다수는 여성이라 결혼과 임신은 권고 퇴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점……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곳곳에서 탄식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다. 그래도 누군가 자리를 비우면 치고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단다. 그러니 방송국에서는 리포터들의 처우를 개선해줄 필요성을 찾지 못하는 듯하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하면 저런 부당한 처우와 임금에도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니 방송국에서는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인 게다. 

사실 나도 그렇다. 문학 강사로 10년 째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처음이나 지금이나 강의료는 똑같다. 내 아이 성적 빼고는 다 오른다는 고물가 시대에도 강의료는 부동이다. 그러나 누구하나 나서지 않는다. 내가 빠지면 그 자리에 들어올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그러니 내가 도서관 계단에서 넘어져 코뼈가 골절이 된 상태에서도 수술한 그 시간만 빼고 깁스한 채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해야 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3월에 개강해서 11월에 끝나는 일 년 과정을 맡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시간은 내가 해결해야 한다. 막내 동생 결혼식과 코뼈 골절로 수술한 날, 10년 동안 딱 두 번 휴강 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지내왔는데 한송이 리포터의 이야기를 듣다 울컥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곧 내 이야기였다. 나도 노동자였다.
한송이 리포터는 본업(방송국 리포터)과 부업(학원) 사이의 경계인이라 했다. 부업이 탄탄하지 않으면 방송국 리포터의 월급만으로는 생계유지가 힘들다고 했다. 방송국 프리랜서 리포터로 버티는 사람들은 다 부업이 있다 했다. 사실 나도 문학 강사 일만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처음에는 ‘6411의 목소리’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지만 어느 순간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너와 나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었다. “요즘 너무 많이 자존감이 낮아져 오늘 이 시간에 신세한탄 좀 하고 실컷 울고 갈 생각이었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제가 위로를 해줘야 할 거 같습니다. 제가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영업 업무를 한다는 한 참가자의 말에 훌쩍이던 사람들이 웃었다. “저도 오늘 10년 넘게 변하지 않았다는 그 강사료, 단돈 몇 만원을 받고 수업하고 왔습니다. 내 노동의 가치, 2시간 수업을 위해 내가 준비한 자료와 투자한 시간을 생각하면……” 한 교육 강사의 말에 교통 방송 리포터 한송이씨가 그저 토닥였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이든 다 노동자다.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더불어 인간존엄성도 지켜야 한다. 우리 모두는 ‘6411의 목소리’의 주인공이자. 그 목소리를 존중하고 지켜줘야 하는 동행자여야 한다. 

9월이었지만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그날 저녁, 책방수북에서 함께여서 초라하지 않았고 든든했다. 그러니 ‘641의 목소리’는 계속 되어야 한다.








‘일하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다

파주 쩜오책방 북토크 후기
- 서윤경



얼마 전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의 출간을 기념하는 뜻깊은 북토크가 열렸다. 이 책은 60명의 각기 다른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공동 저자로 참여하여,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낸 기록이다.

이번 북토크는 60명의 저자 중에서도 특별히 우리 동네 이웃이기도 한 5명의 작가와 함께하는 자리여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60편의 글은 각기 다른 삶의 현장을 그리고 있지만, 모두 ‘일하는 삶’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라는 물음은, 단순히 노동이 끝나는 시간을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북토크에 참여하며, 이 질문이 우리가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지만,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이웃들의 하루를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창(窓)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하며 산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퇴근’이라는 키워드는 그래서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책에는 공장 노동자, 난민, 피해 유가족, 이주민, 교통약자 운전원 등 우리 사회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작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이들의 이야기가 결코 ‘나와 상관없는 먼 얘기’가 아님을 절감했다. 어쩌면 내 일터, 내 동네,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책에 담긴 삶의 고단함과 무게 이면에는, 굳건히 일하며 살아가는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 또한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하며 산다’는 것을 때로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으로만 한정 짓곤 한다. 하지만 북토크에서 나눈 이야기처럼, 누군가를 돌보고, 글을 쓰고, 마을을 가꾸고, 관계를 이어가는 이 모든 활동 역시 우리를 세상과 연결하고 삶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일'이다.

북토크를 마치고 그림책 『첫차를 타는 사람들』 을 함께 읽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림책 표지에는 노란빛을 밝히며 사람들을 가득 싣고 달리는 초록색 6411번 버스가 있었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그 새벽을 여는 노동 안에는 삶을 향한 숭고한 책임과 자부심, 그리고 살아 있음의 기쁨이 깃들어 있다. 이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이번 북토크는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 사회의 ‘퇴근’이 조금 더 평등하고 안전해지기를, 그리고 각자의 일터에서 보내는 하루가 서로의 삶을 밝히는 따뜻한 불빛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번 북토크는 그 희망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지리산포럼 2025> 북토크 후기
- 김벼리



날이 좋던 9월 끝자락, 여행 가는 마음으로 참석한 <지리산포럼 2025>에서 만난 북 토크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는 내게는 여행지에서 받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선물이었다. 북 토크에서 만난 두 필자와의 대화는 내 머릿속에 글자로만 존재하던 문자들에 목소리를 입혀주었다.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현장을 기록한 산문집이다. 북 토크에서는 이집트에서 온 ‘샤이마’, 대만에서 온 ‘간가혜’ 두 필자를 만날 수 있었다.

사회문제, 특히 난민 문제나 이주민 문제를 접할 때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 주로 특정 사건이 생겼을 때에만 기사로 접하게 될 뿐이다. 그래서 이번처럼 난민, 이주민의 개별 삶에 대해, 한국에 오기 전의 삶과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당사자를 직접 만나고,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는 점에서 이번 북 토크는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국에서 난민이라는 ‘주제’는 낯설지 않다. 2018년, 예멘 난민들이 제주공항을 통해 우리에게 오며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됐다. ‘주제’는 익숙하지만, 난민의 ‘존재’는 낯선 한국에서 이들은 오해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오해를 풀기 위한 기사들, 인터뷰와 기획기사가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주로 난민은 당사자로서 ‘말하는’ 존재가 아닌 ‘말해지는’ 존재로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삶은 지워지고, ‘난민 문제’라는 거대한 주제에 갇혀 그 이상의 질문으로, 관심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북 토크에서 샤이마에게 직접 듣는 이야기의 느낌은 달랐다. 샤이마는 이집트에서 언론인이었다. 이집트는 현재 군부정권의 장악과 독재로 방송과 언론이 통제되고 있으며, 반대 목소리에 대한 폭력적 진압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동료들이 끌려가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한국으로 향하게 됐다. 그런 샤이마가 우리나라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4년. 이마저도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샤이마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기간 동안 자신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고, 일자리를 가지기 어렵고, 코로나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아이가 있으나 어린이집 지원받을 수 없었다. 샤이마는 난민 인정을 받은 후에야 이집트에 있는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샤이마는 폭력과 권력에 저항하다 고국을 떠나 한국에 오게 된 직업의식 투철한 언론인이다. 난민법에 따르면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이전 국가에서의 학업, 경력 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샤이마는 현재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한다.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개통해주는 것도 어렵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기본적인 생활만 보장될 뿐, 이전 삶의 연속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 보며 난민이 우리나라에서 ‘시민’으로 존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들이 시민으로 존재하기 위해, 부족한 난민 관련 법과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는 것과 별개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물음들이 생겼다. 샤이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한국인들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난민을 불러, 자신들의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나아가 박해, 전쟁, 폭력, 인권 침해를 피해 이주한 난민을 지원하는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와 같은 단체에 관심을 갖고, 지지와 후원을 부탁했다.

이번 북 토크와 샤이마의 대답을 계기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건 마음이고, 마음에 닿는 건 마주하고 하는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안을 사회문제 자체로 다루기보단 ‘이야기’로 다룰 때 풀리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난민 문제’라는 큰 주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구체적 삶. 구체적 삶을 봐야 감동과 슬픔을 느끼고 그 감정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두 번째 게스트는 대만에서 온 결혼이주민이자 ‘상호문화교육’ 강사인 '간가혜'. 앞서 샤이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민, 이주민에게 가혹한 우리 사회의 면면에 마음이 무거워진 참이었다. 이때 간가혜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다문화 교육은 사람들 마음속의 불안을 가라앉히는 일입니다.”

같은 날 서울에서 벌어진 ‘중국인 아웃’ 시위에 대해서도, “정상이다. 한국인도 불안한 거다. 두려울 수 있다.”는 답변이 큰 울림을 줬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모른다. 무지는 오해를 만들고, 오해는 미움으로 바뀐다. 난민을, 이주민을, 특정 민족을 쉽게 오해하고 배척하는 한국 사회가 문제인 것도 맞지만, 문제라고 지적만 하기 이전에 ‘두려움을 없애’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시혜가 아닌 환대로 이주민을 맞는 방법을 묻는 질의가 있었다. 간가혜는 그냥 편하게 맞이해달라고 했다. 자신은 외국인이 맞고, 앞으로도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존재하겠다고. 거리를 두어야 예의를 지킬 수 있다는 간가혜를 보며 상대를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것만 오해가 아니라 너무 조심하고 배려하는 것도 오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가혜의 말처럼, 조금만 힘을 빼고 서로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낯섦, 선입견을 호기심으로 바꾸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말하는 간가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의 삶, 그녀의 투쟁, 그녀의 노동이 앞으로 더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게 될 우리 사회를 두려움보단 다정한 공간으로 만들 것이다.

북토크 이후 책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를 읽었다. 글자 뒤에 있는 샤이마와 간가혜가 보였다. 원래라면 글자로만 읽혔을 다른 팔레스타인 난민의 글에서도, 재일동포의 글에서도 이들의 얼굴이 그려졌다. 한번 만난 얼굴은, 다른 얼굴이 있다는 것 또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런 만남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북 토크는 내게 그러한 만남을 선물했다. 일상에서, 삶 속에서 이러한 만남의 자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공간,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이번 북 토크가 나에게는 그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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