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81)] 노회찬의집 개관(공간투어) 노회찬이라는 이웃을 소개하는 시간

노회찬이라는 이웃을 소개하는 시간
'노회찬의집 6411' 개관 기념, 공간투어 진행 후기
- 이희민 (노회찬재단 기록연구실 차장)
어릴 적 꿈꾸었던 가이드가 되어
공간투어를 하며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성남, 안양, 부산에서 멀리 오신 분들부터 온 가족이 함께 오신 분들, 노회찬 의원님과 연고가 있는 분들과 누님의 지인들, 그리고 연고는 없지만 기꺼이 발길을 하신 분들과 의원님을 잘 모르는 청년들, 의원님의 모든 행적을 곁에서 목도하신 손님까지 그 면면은 참으로 넓고 깊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제 갓 독립하여 어머니의 권유로 오게 된 스무 살 대학생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사무처 회의가 진행되는 중에 1층 책상에 혼자 앉아 평전을 읽으며 사유의 시간을 갖던 그 청년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감동하여 청년의 사색을 깨우며 의원님이 가졌던 꿈과 행보를 열심히 설명해 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어디 가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설명해 본 경험이 제게는 참 생경했습니다. 어릴 적 꿈 중에 여행 가이드가 있긴 했지만 막상 하려니 참 어색하고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사무처 동료를 붙잡고 몇 시간이고 리허설을 하고, 총장님과 실장님께 사적인 에피소드를 간청하기도 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의원님이 겪으신 ‘중학 입시’나 ‘고교 입시 재수’ 같은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것도 저에겐 큰 숙제였습니다. 그렇게 몇 주간 대본을 다듬고 큐카드를 제작했는데 이제는 큐카드 없이도 설명이 가능한 재단의 큐레이터가 되었습니다.
방문하는 이웃들로 더욱 풍성해지는 이야기
의원님의 행적뿐만 아니라 이웃인 초원교회 신도님들도 투어에 오셔서 소중한 이야기를 보태주셨습니다. 원래 이 집에 살던 권사님에 대한 기억과 집 자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신 덕분에 제가 준비한 것보다 훨씬 풍부한 큐레이팅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관심을 받은 소장품은 아무래도 ‘마지막 소지품’이라 부르는 가방 속 물건들이었습니다. 특히 다들 ‘선스틱’에 큰 관심을 보이셨는데 서거하셨던 그해 여름의 열기와 선스틱이라는 나름의 신문물이 현재의 우리와 연결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함께 사는 나라
저 역시 의원님을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저 어릴 적부터 진보정치와 권리운동에 관심을 가지며 알게 된 의원님, 그리고 재단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의원님의 모습에 동화되어 어렴풋이 아는 사람처럼 정이 갈 뿐입니다. 큐레이팅 담당으로서 좀 더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더 치열하게 에피소드를 모았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마지막 감옥 서신에 “제가 꿈꾸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 이것은 이상한 사상이 아니라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구절을 보며 총장님은 “학교에서 배우기는, 마르크스 책 읽고 그랬던 거면서” 하고 그립게 웃으셨습니다. 그럴 때면 의원님이 마치 나의 이웃 아저씨나 삼촌처럼 가까이 느껴져 같이 그리워지곤 했습니다. 제게 이런 동화의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이 기분을 노회찬의집 6411을 방문해주는 손님들께도 고스란히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곳 창신동은 저처럼 의원님과 직접적인 연고는 없는 동네입니다. 하지만 전태일 재단이 근처에 있고, 봉제사들의 일터이며, 이주민들의 거리이자, 종로구에서 가장 큰 재개발 구역입니다. 피난민과 상경 이주민들이 일구었던 동네가 이제 외국에서 온 이주민들의 쉼터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가난한 이들이 살기 어려운 곳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재단이 이웃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이들입니다. 그리고 재단이 꿈꾸는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는 그들과 함께 사는 나라입니다. 투어의 마지막, 저는 그런 이야기를 마무리로 전하며 손님들을 배웅합니다.